스스로의 가치를 깎아 내리시면 어떻게 합니까.

시간 때우기 & 공백 메우기로 그저 의미 없이 남 까는 글이나 쓰겠습니다.


당신은 얼마짜리입니까?

오늘의 희생자는 왕년의 眞明行, 현재의 無名氏님이 되겠습니다(이하 '무명씨').

혹시나 해서 말씀드립니다만, 저는 무명씨님의 정치적 사상 등을 가지고 그를 비방중상하거나
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지금으로부터 겨우 6개월 정도 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니
그냥 실소가 나와서 말이죠.

무명씨님은 대출심사 업무를 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뭐, 나름 중요한 업무를 맡게 되신 점은
축하해야 할 일입니다. 또, 글 자체는 몹시 현실적이며, 추천받을 만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무명씨님의 6개월 전의 행각은 어땠습니까?
이글루스에서 나름 영향력 있고 이름 있는 '메이저 블로거'였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어렵지도 않고 시간도 소모되지 않는 간단한 행동을 공언해 놓고 지키지 않으셨습니다.

한 마디로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면을 친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전후 사정을 보건대 깜빡 잊고 있었다라든가 바빠서 못했다 등의 핑계는 전혀 통할 수가 없었고,
무엇보다도 방치 플레이를 계속하다 제가 지적하자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듯이 바로 실천에
옮기신 점은 제가 제기한 문제를 자인하는 것 외의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잠깐 옆으로 새자면, 저는 '믿음'을 (사전적 정의와 무관하게) 비물질적인 '신뢰'와
물질적인 '신용'으로 나눠서 봅니다.
신뢰할 수는 없지만 신용은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 것이고,
신용할 수는 없지만 신뢰는 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신용할 수 있는 사람이 신뢰도 할 수 있고,
신용할 수 없는 사람이 신뢰도 가지 않는 사람일 것입니다.

스스로 신뢰할 수 없는 행동을 보여준 분이 남의 신용을 평가하는 것…
마치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것 같은 모양으로 보이는 것은 왜일까요.

by 疹冥行 | 2009/08/28 00:10 | 트랙백 | 핑백(1) | 덧글(26)

제02편 : 내 이름은 사카키바라 세이토 - 아즈마 신이치로(東真一郎)

살인자 정보 :
이름 : 아즈마 신이치로(東真一郎)
※.범행 당시 사용한 가명인 사카키바라 세이토(酒鬼薔薇聖斗)로 더욱 알려져 있다.
출생 : 1982년 7월 7일, 효고현 코베시
사망 : 현재 생존(2005년 1월 1일 형기 만료로 출소).
살해 실적 : 2명(1997년 3월 1명, 5월 1명)
살해 동기 : 사람을 죽이는 데에서 성적 쾌락을 느낌
기타 범죄 : 절도, 협박, 폭력, (살인에 부대된) 사체유기

*.주의 : '게게게의 키타로'로 유명한 만화가 미즈키 시게루가 한때 이 이름을 필명으로 쓰기도 했다.
이 이름 붙어 있는 만화책 보고 '헉, 살인자가 만화도 그렸나!'하고 놀라지 말도록 하자.
*.사진은 무단히 퍼온 것이기는 한데, 원 출처를 도저히 알 수가 없다.
(포커스에 게재되었던 사진이 돌아다니는 것으로 추정된다)



피살자 정보 :
피살자 1 : 야마시타 아야카(山下彩花, 10, 초등학생)
피살자 2 : 하세 쥰(土師淳, 11, 초등학생)

*.나이, 직업 등은 모두 피살 당시를 기준합니다.



1997년 2월 10일, 효고현 코베시에서 2명의 어린이가 습격당했다.
피해자의 증언에 따르면 범인은 교복을 입고 가방을 들었으며, 망치로 피해자들을 공격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피해자측의 요망에 따라 보도되지 않았고 그대로 묻혔다.



이어 3월 16일 12시 25분 경, 아즈마는 야마시타에게 길을 물어보는 척하면서 야마시타의 머리를 망치로
때렸고, 야마시타는 중태에 빠졌다. 결국 야마시타는 1주일 뒤인 23일, 뇌 손상으로 사망했다.

뿐만 아니라, 아즈마는 달아나면서 10여분 뒤, 다른 어린이(당시 9)를 칼로 찔러 부상시켰다.

이 사건에 대한 대책으로 이후 한동안 초등학생들이 모여서 집단으로 등교를 하기도 했다.



약 2개월 뒤인 5월 24일, 두번째 피살자인 하세가 자택 근처에 사는 할아버지 집에 간다고 하고
외출하여 그대로 행방불명이 되었다. 25일 경찰과 인근 주민 합동으로 수색이 이뤄졌으나 찾지 못했고,
경찰은 26일에 공개수사로 전환했다.

그리고 27일 6시 40분 경, 코베시립 토모가오카 중학교(市立友が丘中学校)의 교문 앞에 놓여진 하세의
머리가 발견되었다. 입에는 경찰에 대한 도전장이 꽂혀 있었고, 말미에는 學校殺死の酒鬼薔薇라는
서명과 함께, 學校殺死의 위에는 SHOOLL KILL이라는 엉터리 영어 표기가 되어 있었다(이 SHOOLL
KILL 표기는 나중에 아즈마를 웃음거리로 전락시켰다).

학교는 학생들을 귀가시켰고, 즉시 수색이 이뤄져 15시 경에 하세의 나머지 사체가 발견되었다.



코베현 경찰은 이 사건을 집중적으로 수사했지만 그리 진전되지 못했고, 6월 4일에 코베신문사
두번째 도전장이 배달되었다. 그러나 하세 살해 사건과 이전의 사건에 대한 관련성이 전혀 밝혀지지
않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9일 경찰이 내린 '범인은 170cm 정도의 20대∼40대'라는 잠정적 결론은
사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다.

한편 이 사건으로 개봉 예정이던 미국 영화 "스크림"이 개봉 연기되기도 하고, 프로젝트 그룹인 "生殺"의
음반 발표가 미뤄지는 등, 애꿎은 피해를 본 곳도 있었다.



한편 6월 25일, 경찰은 하세의 사체 검사 결과, 범인이 하세와 안면이 있는 즉 면식범의 소행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27일에는 당시의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대신이 직접 사건 해결에 전력을 기울이라고
이례적인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다음 날인 28일, 아즈마는 체포되었다. 당시 약관 14세였다. 이어 7월 9일에 수색 결과로 흉기인
망치, 나이프 등이 발견되었다.

8월 1일에는 체포 당시 19세였던 살인마 나가야마 노리오(永山則夫)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는데,
이는 소년법 61조에 대한 비판 여론을 회피하려는 법무성의 쇼라는 비판도 있었다.

한편 수사과정에서 야마시타 살해사건과 하세 살해사건의 사이에 아즈마가 쓴 "징역13년"이라는
글이 발견되었다. 해당 글은 스스로의 살해 욕구를 설명한 글이었다. 또, 아즈마가 9세 때부터
바모이도오키(バモイドオキ)라는 신을 스스로 만들어 숭배해 왔음이 드러났다.

10월 17일에 코베가정법원은 아즈마에게 의료소년원송치를 판결했고, 20일에 칸토의료소년원
(도쿄도 후츄시 소재)에 수감되었다. 2001년 11월에는 토호쿠소년원(미야기현 센다이시 소재)으로
일시 이감되었다가 12월에 칸토의료소년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2005년 1월에 소년원에서 출감했다.



한편 모방범죄가 끊이지 않았는데, 그 중 1999년 8월에 스즈무라 야스후미(鈴村泰史)가 일으킨
통칭 니시오시 스토킹 살인사건과, 1999년 12월에 오카무라 히로마사(岡村浩昌)가 일으킨
통칭 테루쿠하노루 사건이 대표적이다. 아즈마와 같은 1982년생인 스즈무라는 아즈마를 존경하고
있으며, 또한 미성년이면 사형을 받지도 않고, 성인보다 처벌이 가볍다는 것을 이용하여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하여 일본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한편 오카무라는 하세 살해사건을 흉내낸
살인을 저질렀으나 그 방법이 아즈마에 비해 치졸하여 아즈마보다 나이가 적거나, 지능이 딸리는
사람으로 추정되었으나, 실제로는 21세의 청년이었다(체포되기 전에 자살). 테루쿠하노루라는
이름은 피살자의 사체와 함께 둔 범행성명문에 쓴 가명이다.

2000년 5월 3일에는 일명 네오무기챠(ネオ麥茶)라는 HN으로도 알려진 타니구치 세이이치
(谷口誠一, 당시 17)에 의한 버스 납치사건, 통칭 니시테츠 버스잭 사건이 일어난다. 타니구치는
의료소년원에 들어간 다음 아즈마와 함께 달아나기 위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하여 아즈마와는
별도의 의료소년원(교토의료소년원)에 수감되었다.



당시 미성년자라는 까닭으로 실명의 공개는 엄격히 제한되었으나(일본의 소년법 제61조에 의거),
일찌감치 온갖 추측이 난무하기 시작, 몇개로 압축되었다가 이름이 알려지고 말았는데, 그 확산에
일조한 것이 본명이 공개된 곳에 대해 보도한 1997년 6월 30일자 산케이 신문의 보도였다. 뿐만
아니라, 신쵸사에서 발행하는 사진보도 전문지인 '포커스'는 1997년 7월 2일호에 아즈마의 사진을
게재했고, 도쿄 법무국이 회수를 권고했으나 신쵸사는 권고를 일축했고 이후로도 아즈마와 관련된
보도를 실명으로 계속했다.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은 것은 역시 신쵸사에서 발행하는 주간 신쵸(週間 新潮)의 2005년 1월 20일호에
실린 기사였다. 해당 기사는 아즈마가 2004년 12월에 소년원에서 일으킨 폭행 사건을 아즈마의 실명을
그대로 노출하여 보도하고 있었다. 법무성은 이에 대해 해당 사건은 사실 무근이라고 신쵸사에 항의하나,
이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하지 않아, 아즈마의 실명 공개를 인정한 꼴이 되고 말았다.



참고로 일본의 소년법 제61조는 아래와 같다.

第61条(記事等の掲載の禁止)
家庭裁判所の審判に付された少年又は少年のとき犯した罪により公訴を提起された者については、氏名、年齢、職業、住居、容ぼう等によりその者が当該事件の本人であること推知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な記事又は写真を新聞紙その他の出版物に掲載してはならない。
(이하 번역)
제61조(기사 등의 게재의 금지)
가정법원의 재판에 회부된 소년, 또는 소년일 때 저지른 죄에 의해 기소된 자에 대하여는 이름, 나이, 직업, 주소, 용모 등을 통해 그 사람이 해당 사건의 본인임을 추정할 수 있게 하는 사실 또는 사진을 신문 기타 풀판물에 게재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조문은 처벌규정이 없어 거의 무시당하고 있는 실정으로, 언론사나 출판사, ISP 등에서 실명을
까발리지 않는 것은 준법 및 자주규제를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이런 식으로 보호하므로
소년범죄가 흉폭화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여담으로 한국의 법률은 어떨까? 소년법 68조에 비슷한 내용이 규정되어 있다.

제68조 (보도 금지) ① 이 법에 따라 조사 또는 심리 중에 있는 보호사건이나 형사사건에 대하여는 성명·연령·직업·용모 등으로 비추어 볼 때 그 자가 당해 사건의 당사자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정도의 사실이나 사진을 신문이나 그 밖의 출판물에 싣거나 방송할 수 없다.
② 제1항을 위반한 다음 각 호의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 신문 : 편집인 및 발행인
2. 그 밖의 출판물 : 저작자 및 발행자
3. 방송 : 방송편집인 및 방송인
[전문개정 2007.12.21]

일본의 것과 비교했을 때 처벌 규정이 있고(2항), '조사 또는 심리 중의 사건'으로 범위를 구체적으로 한정(1항)하고 있다.



참고한 곳들(이라기 보담 반쯤 번역했다고 봐도) :
http://www5.pf-x.net/~kusogaki/
http://www.uranus.dti.ne.jp/~yuugeki/bara3.htm
http://www.shinpei.jp/writing/extra01.html
http://www.nagaitosiya.com/a/sakakibara.html
http://homepage2.nifty.com/NODE/ubawareta/yamashitaayaka.html
http://www.alpha-net.ne.jp/users2/knight9/koube.htm
http://members.jcom.home.ne.jp/3113366001/hitorigoto_shounenhanzai.htm
http://netsbom.blog.so-net.ne.jp/2008-03-24



관련 서적 :
「少年A」この子を生んで……―父と母悔恨の手記 (아즈마의 부모, 분게이슌슈, 2001)
少年A 矯正2500日全記録 (쿠사나기 아츠코, 분게이슌슈, 2006)

by 疹冥行 | 2009/08/20 11:51 | 왜국 살인마 열전 | 트랙백 | 핑백(1) | 덧글(6)

[509호] 08.거래기록 제2호 - Garden of night

앞글지금 글 → (목록 끝)

<밤의 정원> 제라늄 대형 3건 주문!

"=ㅅ= 예? 어서오세요"
화훼점 주인의 인사와 함께 고양이 한 마리가 뛰어나오가도 다시 들어갔다.
왜지. 그나저나 오늘도 더운 것 같다.

'실내가 삭막... 새집 증후군.... 오덕구 공기...'

이런, 수많은 인터뷰이 앞에서 전혀 거침이 없던 이 내가 지금 단순한 상점 주인 앞에서 얼고 있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이다. 단편적 단어을 떠오르는대로 내뱉고 있는 것은 또 무엇인가.
이래서야 무슨 자폐증 환자 아닌가.

“같은 빌라 사시는 분인가봐요. 몇 호 사세요?”
'509'

아 이런… 또 얼어서 문장이 나오다 만다. 정신과 의원을 먼저 찾아봐야되는 건가?

“꽃이 피는 식물을 좋아하세요? 아니면 열매가 열리는 종류? 그것도 아니면 잎이 잘 생긴 식물이라던가...”
'효과 크고 쉬운 걸로 주세요.'

후, 이제 말문이 트인 것 같다. 도대체 이건 무슨 증상인가.
범죄자만 잔뜩 상대하다 보니 내 인간성에 이상이 생긴 것인가?

“손님 반응을 봐서는 손바닥 선인장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만...”
'손바닥 선인장?'

당연히 식물에는 문외한인 나다. 선인장까지야 알아도, 손바닥 선인장이라고만 하면 알 리가 없다.
점주는 눈치를 챘는지 손바닥 선인장 실물을 가리켰다. 글쎄, 뭔가 미묘하다.

'그건 좀...'

그러자 점주는 5엽의 붉은 꽃이 핀 화분을 권해왔다. 제라늄이란다. 음, 뭔가 당긴다.

“그런데 어쩌나 제라늄은 말씀하신 것처럼 어마어마하게 큰 화분에 심는 타입이 아닌데...
만약 여러 개 구입하신다면 가로로 긴 화분으로 옮겨 심어드리겠습니다. 새 화분 값만 추가하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준비해서 연락주시면 찾아가겠습니다. 얼마지요?'

대금을 지불하고 나는 화훼점을 뒤로 했다.
이제 삭막한 실내 분위기가 조금은 화사해 지겠지. 기대된다.

512호 햇살냥이 - 햇살 가득한 오후에...
이글루스 가든 - 100인의 이누이 - 이글루스 빌...

by 疹冥行 | 2009/08/16 22:35 | 이글루스 빌라 509호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번역 : The Many Faces of Serial Killers(LIFE.COM)

LIFE가 선정, 발표한 30인의 연쇄 살인자(원문)


쌀국의 사진 보도 전문지인 LIFE가 선정한 연쇄 살인마 30인. 특히 나라를 표시하지 않은 사람은 미국인.

*.이름을 엉터리로 읽었을 수 있고, 영어가 젬병인 제가 영어 > 프랑스어 > 한국어로의 2중 번역을 시키면서
엉터리로 번역했을 수 있으니 가급적 원문을 확인 바랍니다.

*.30명을 국적 별로 나누면 : 미국인이 20명, 영국인이 3명, 프랑스인이 2명, 기타가 5명입니다.
기타는 한국, 멕시코, 캐나다, 도이칠란트, 러시아인이 각각 1명씩입니다. 일본인이 하나도 없는 것이 심히 실망스럽군요.
그러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유영철이 유수의 살인마들을 제끼고 선정된 것을 기뻐해야 됩니까? 통탄해야됩니까?


1.데이빗 버코위츠(David Berkowitz) : 일명 Son of Sam. 1976년 7월에서 이듬해 8월에 이르는 기간동안 6명을 살해하고 7명을 다치게 했다. 현재는 징역 365년을 선고받고 복역중.

2.리처드 라미레즈(Richard Ramirez) : 일명 Night Stalker. 13명을 살해하고 5건의 살인 미수를 저질렀다.

3.제프리 L. 다머(Jeffrey L. Dahmer) : 1978년에서 1991년에 걸쳐 17명을 살해했다.

4.디어도어 로버트 번디(Theodore Robert Bundy) : 1970년대에 최소한 26명을 살해했으며, 1978년 12월 탈옥하여 재차 살인을 저지른다. 이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 6일 뒤 다시 체포되어 1989년에 처형되었다. 본인의 진술에 따르면 300명이 넘는 사람을 살해했다고 한다.

5.아일린 워노스(Aileen Wuornos) : 여성 연쇄 살인범. 1989년 및 이듬해에 걸쳐 7명을 살해했다.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살해한 7명은 모두 자신을 강간하려고 든 사람이라고 한다.

6,찰스 맨슨(Charles Manson) : 사이비 교주로 알려진 한편으로 1969년에 헐리웃에서 저지른 살인사건이 유명한 외에, 도합 9명의 죽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7.테드 카진스키(Ted Kaczynski) : 장래가 촉망되던 수학자였던 카진스키는 그 재능을 범죄에 활용하여 1978년에서 1995년에 걸쳐 폭탄이 든 우편물을 통해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결과적으로 3명이 죽고 23명이 다쳤다.

8.헨리 리 루카스(Henry Lee Lucas) : 스스로 600명이 넘는 사람을 죽였다고 주장했으나, 대부분은 허위로 밝혀졌고, 최종적으로 11건의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2001년 복역중 사망.

9.존 앨런 무하마드(John Allen Muhammad) 및
10.리 보이드 말보(Lee Boyd Malvo) : 무하마드와 알보는 2002년 10월, 워싱턴 DC에서 총기를 난사하여 16명을 죽이고 2명을 다치게 했다.

11.해롤드 시프먼(Harold Shipman, 영국) : 일명 Dr. Death. 의사인 시프먼은 1975년에서 1998년에 걸쳐 환자에게 극약을 투여하는 방식으로 총 218명을 살해했다. 2004년 자수.

12.데니스 L. 레이더(Dennis L. Rader) : 일명 BTK Killer. 1973년에서 1991년에 걸쳐 도합 10명을 살해하고, 경찰을 도발하기도 했다. BTK는 bind, torture, kill의 약자로 문자 그대로 피살자를 묶고, 고문하고, 죽이는 살해방식을 지칭한다.

13.유영철(Yoo Young-Chul, 한국) : 2003년에서 2004년에 걸쳐 21명을 살해했다. 1997년 이후 한국에서 최초로 사형이 선고된 인물이기도 하다.

14.피터 서트클리프(Peter Sutcliffe, 영국) : 일명 The Yorkshire Ripper. 피해자를 망치로 쳐서 실신시키고 칼로 찔러 죽이는 수법으로 도합 13명을 살해. 1981년 체포되어 종신징역형에 처해졌다.

15.마이클 브루스 로스(Michael Bruce Ross) : 1981년에서 1984년에 이르는 기간동안 코네티컷 주와 뉴욕 주 일대에서 8명의 여성을 강간하고 살해했다.

16.앨버트 드살보(Albert DeSalvo) : 1962년에서 1964년에 걸쳐 13명의 여성을 (대부분은 강간한 뒤) 살해했다. 그런데 이 사건 중 다수는 공범이 있음이 의심된다고.

17.조엘 리프킨(Joel Rifkin) : 1989년에서 1993년까지 최소한 17명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차 안에서 사체가 발견되어 체포되어 징역 203년에 처해졌다.

18.존 웨인 게이시(John Wayne Gacy) : 건설회사의 사장인 게이시는 1972년에서 1978년까지 33명을 살해했으며, 피살자의 사체를 토막내어 냉장고에 보관했다.

19.찰스 컬렌(Charles Cullen) : 간호사로 일하며 대단히 이해할 수 없는 동기로 45명을 살해했다. 2003년에 체포되어 127년형을 선고받았다.

20.게리 리지웨이(Gary Ridgway) : 시애틀 및 타코마 일대에서 20여년 넘는 기간동안 100여명 가까운 여성을 목졸라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재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21.앙헬 마투리노 레센데스(Angel Maturino Reséndiz, 멕시코) : 범행과 범행의 사이에 철도를 이용하여 이동, Railroad killer라는 별명이 붙기도 한 레센데스는 피해자의 가택에 침입하여 피해자를 살해하고 금품을 훔쳤다. 그는 미국에서만 최소한 15명을 살해했다.

22.로버트 윌리엄 픽튼(Robert William Pickton, 캐나다) : 1997년에서 2001년에 이르는 기간동안 49명의 여성을 살해했다. 2002년 체포되어 종신형에 처해졌다.

23.도널드 닐슨(Donald Neilson, 영국) : 일명 Black Panther. 강도에서 살인으로 전업하여 1970년대 중반에 4명을 살해했다.

24.데릭 토드 리(Derrick Todd Lee) : 지능지수 65의 리는 1992년에서 2003년 사이에 7명의 여성을 성폭행하고 살해했다.

25.페테르 퀴르텐(Peter Kürten, 도이칠란트) : 일명 Der Vampir von Düsseldorf. 1910년에서 1929년까지 뒤셀도르프에서 9명을 살해하고 4건의 살인 미수를 저질렀다. 1930년 5월에 체포되어 1931년 7월 2일에 참수되었다.

26.에드 긴(Edward Theodore Gein) : 1950년대에 최소 11명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덤 도굴꾼이기도 했는데, 도굴의 목적은 사체였다고 한다. 정신병을 앓다가 1984년에 사망했다.

27.알렉산드르 피슈킨(Alexander "Sasha" Yuryevich Pichushkin, 러시아) : 일명 Chessboard Killer. 1992년부터 2006년 사이에 63명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 48명은 확실하다. 이는 앞 세대의 연쇄 살인자인 안드레이 치카틸로에 대한 경쟁 의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의 최종 목표는 체스판의 칸 수인 64명을 살해하는 것이었기에 위의 별명이 붙었다. 현재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안드레이 치카틸로(Andrei Chikatilo, 러시아) : 일명 Rostov Ripper. 1978년에서 1990년 사이에 53명을 살해했다.

28.에프렌 살디바르(Efren Saldivar) : 캘리포니아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50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120명을 살해했다는 설도 있다.

29.프랑시스 옴(Francis Heaulme, 프랑스) : 히치하이킹을 통해 살해행각을 벌여 Routard du crime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가 살해한 총 인원은 불분명하나 50명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30.미셸 푸르니레(Michel Fourniret, 프랑스) : 1987년에서 2001년까지 프랑스와 벨기에를 돌아다니며 9명을 살해했고, 19명에 대한 살해 혐의도 받고 있다. 2003년에 체포되어 현재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
본문 추가(8/11 13:43)

미국 언론이라 미국인이 많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저라면 저기서 무하마드와 말보 정도를 빼고, 아래의 2명을 넣겠습니다.

제안 1.메리 플로라 벨(Mary Flora Bell, 영국) : 비록 2명 밖에 죽이지 않았으나, 첫번째 살인을 저지를 당시 약관 11세라는 기록을 남긴 인물입니다.

제안 2.마쓰나가 후토시(Matsunaga Futoshi, 일본) : 일가족 6명을 감금하고, 자신이 직접 손을 대지 않고 일가친척끼리 살해하고, 사체를 처리하도록 하는 잔학하고 기괴한 살인을 저지른 사람입니다. 도합 7명을 살해했습니다(언젠가 다룰 생각입니다).

by 疹冥行 | 2009/08/10 20:39 | 왜국 살인마 열전 | 트랙백 | 덧글(25)

[509호] 07.거래기록 제1호 - Garden of night

앞글지금 글뒷글

문득 실내를 돌아봤다. 정말 필요한 것 외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무기질적인 실내다.
외근이 잦고 이사도 자주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만들어진 결과일 것이다.

거기다가 다루는 것은 살벌한 사건기사 투성이.
나 자신도 거기에 따라 삭막한 사람이 되어가도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좀 분위기라도 바꿔볼까. 큼직한 화분이라도 하나 가져다 놓으면 분위기도 덜 삭막해지고,
(어차피 공조 설비가 완벽해서 공기 질은 별 문제 없지만) 실내 공기도 개선될 것이다.

귀찮음을 극복하고 천근만근인 몸을 일으켜 1층 화훼점으로 갔다.

--------------------------------------------------
"=ㅅ= 예? 어서오세요"

뭔가 냉장고 비슷한 기구에서 꽃을 꺼냈다 넣었다 하던 주인이,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 화들짝 놀라면서도 영업용 미소(?)로 맞이해 주었다.


512호 햇살냥이 - 햇살 가득한 오후에...
이글루스 가든 - 100인의 이누이 - 이글루스 빌...

by 疹冥行 | 2009/08/09 21:24 | 이글루스 빌라 509호 | 트랙백(1) | 핑백(2) | 덧글(0)

제01편 : 빗나간 인생의 종점 - 히다카 히로아키(日高広明)

살인자 정보 :
이름 : 히다카 히로아키(日高広明)
출생 : 1962년 4월, 미야자키현 미야자키시
사망 : 2006년 12월 25일, 히로시마 구치소에서 사형 집행, 향년 44세
살해 실적 : 4명(1996년 4월 1명, 8월 1명, 9월 2명)
살해 동기 :
 1.사람을 죽이는 자체에 쾌락을 느낌
 2.채무 변제를 위한 자금의 마련, 그러나 실제 훔친 금액은 4건 다 합해도 12만엔(+12만엔)에 불과.
기타 범죄 : 절도, 음주운전, (살인에 부대된) 사체유기



피살자 정보 :
피살자 1 : 미야지 사토에(宮地里枝, 16, 고등학생)
피살자 2 : 코게쯔 리에(古月理江, 23, 음식점 점원)
피살자 3 : 후지야마 마리코(藤山万里子, 45, 호스테스)
피살자 4 : 로만스 요코(ロマンス洋子, 32, 매춘부)

*.피살자의 이름은 읽는 방법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관계로 잘못 읽었을 수 있습니다.
*.나이, 직업 등은 모두 피살 당시를 기준합니다.



히다카 히로아키는 미야자키현의 유복한 가정 출신이다. 뿐만 아니라, 히다카 본인도 유능한 사람으로,
학업 성적도 우수하고 운동에도 재능이 있었다. 또 교우관계도 원활했다. 장래 희망은 교사 내지는
공무원으로, 문자 그대로의 촉망받는 청소년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히다카의 인생이 빗나가기 시작한 것은 대입부터이다. 그는 담임 교사의 권유로 쯔쿠바 대학교
도전했지만. 낙방하고 말았다. 게다가 보험삼아 응시했던-즉 합격을 확신했던-후쿠오카 교육대학교조차
합격하지 못했다. 결국 히다카가 입학한 곳은 후쿠오카 대학교였다. 그러나 사립학교인 후쿠오카
대학교는 국립 대학교인 앞의 두 학교에 비해 그 격이 낮았고, 중고교 때 학벌이 좋지 못한 교사를
업신여기기도 했던 히다카로서는 크나큰 굴욕이었다. 결국 히다카는 입학한 뒤로는 학업을 멀리하고
주색에 빠졌고, 스스로가 쯔쿠바 대학교에 도전했던 경력으로 동료 학생들에 대한 우월감에 도취되었다.

그러나 4학년이 되자 히다카가 그렇게 얕보던 동료 학생들 중에는 히다카가 그렇게 선망하던 공무원이
된 사람도 나왔고, 히다카는 반대로 유급하고 말았다. 결국 히다카는 대학교를 중퇴하고 미야자키현으로
돌아갔고, 주위에는 사법시험에서 떨어져서 포기하고 돌아온 것이다고 얼버무렸다.



이후 시청의 비정규직 직원으로 취직했지만, 여전히 주색에 빠져 소매치기와 음주 운전을 반복하던
히다카는 1986년 1월 25일, 어느 가정집에 쳐들어가 집에 있던 사람을 위협하여 현금과 예금통장을
빼앗았다. 그러나 곧 히다카는 체포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하게 된다.

출소 후인 1989년, 히다카는 작은 아버지가 사는 히로시마로 이주하여 택시 운전사로 취직했고,
이어 1991년에는 작은 아버지의 소개로 결혼도 했다. 그러나 히로시마에서도 주색에 빠진 생활은
여전하여 월급의 대부분을 주색으로 탕진했고, 결혼 당시에도 500만엔에 달하는 빚을 지고 있었다.

1993년에는 자식이 태어났지만 곧 아내가 정신이상 증세를 보여 입원, 자식은 처가에 맡기게 되었다.
이후로도 주색에 빠진 생활은 계속되었고, 아내의 입원비 등으로 인해 더욱 많은 소비를 하게 되어
히다카의 빚은 늘어만 갔다.



1996년 4월 18일 저녁, 히다카는 히로시마에서 원조교제를 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유명했던
신텐치(新天地) 공원에서 첫 피살자인 미야지에게 접근, 2만엔을 건너주고 성 관계를 갖기로 한다.

그러나 히로시마에서 20km 떨어진 쿠레(吳)에 사는 미야지는 히다카에게 자신이 오사카에서 왔고,
히로시마에서 돈을 모아 쿠레에 상환하러 가야한다고 거짓말을 한다. 이 말을 믿은 히다카는 관계를
가지는 것을 포기하나 바로 돌아가려 하는 미야지를 보고 속았다고 판단하게 된다. 또, 다음 날로
다가온 빚의 월부금 상환도 있어, 미야지가 가지고 있다고 말한 10만엔과 자신이 건네준 2만엔을
강탈할 생각을 하게 된다.

이어 히다카는 미야지에게 쿠레까지 태워 주겠다고 제안, 미야지를 태우고 가다가 차에 이상이 생긴
것처럼 가장, 미야지에게 차를 살피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여 미야지가 등을 보인 틈을 타 미야지를
목 졸라 죽이고 그 사체를 내다버린다.

하지만, 미야지의 말과는 달리 미야지는 단 3만엔만을 가지고 있었고 히다카는 자신이 건네준 2만엔까지
총 5만엔을 찾아내는 데 그쳤다.

미야지의 사체는 5월 6일 발견되었다.



미야지가 오사카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된 히다카는 언제 체포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좌불안석이었지만,
7월이 되어도 경찰이 자신을 용의자로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에 히다카는 안심하고 두번째
범행을 저지르게 된다.

1996년 8월 13일, 히다카는 두번째 피살자인 코게쯔를 미야지와 대동소이한 방법으로 유인,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했다. 히다카는 코게쯔로부터 자신이 건네준 3만엔을 포함하여 도합 52000엔을 훔쳐냈다.
미야지 사건과의 차이점은 성 관계를 가졌다는 정도이다.



1996년 8월 30일, 히다카는 매춘부인 후지야마를 목격한다. 후지야마와 히다카는 3년 정도 전에 매춘을
하여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그런데 당시 히다카가 가지고 있던 돈을 도난당했고, 히다카는 이로 인해
후지야마를 의심하고 있었다. 이는 히다카가 후지야마를 살해하는 동기의 하나가 된다.

9월 7일, 히다카는 후지야마를 유인하여 차내에서 관계를 가질 것을 요구한다. 관계 중 히다카의 행동에
위험을 느낀 후지야마는 저항하나 역시 교살당하고 만다. 히다카는 자신이 건네준 3만엔을 포함하여 총
82000엔을 훔치고, 후지야마의 사체를 싣고 가다가 적당히 길가에 버리고 달아났다.



마지막 범행은 후지야마의 피살로부터 1주일 뒤인 9월 14일 일어났다. 피살자는 역시 히다카와 안면이
있는 매춘부인 로만스였다(로만스라는 성은 외국인 남성과 결혼하여 그 성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히로시마 교외의 호텔로 가 관계를 가진 히다카는 로만스를 귀가시켜주겠다는 명목으로 태우고 가다가
미야지, 코게쯔와 동일한 방법으로 속이려 했으나, 이미 히다카의 사건은 히로시마의 매춘여성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어 위험을 느낀 로만스는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히다카는 달아나는 로만스를 쫓아가 끌고와
실신할 때까지 구타한 다음 목을 졸라 살해하고 자신이 건네준 4만엔을 포함한 56000엔을 빼앗고 사체를
유기했다.

다행히도 로만스의 사체는 바로 다음 날 아침에 발견되었고, 전날 밤 로만스가 히다카의 택시에 타는 것을
목격한 증인도 있어 경찰은 바로 히다카를 의심하게 된다.



경찰은 히다카가 일하는 택시 회사의 운행 기록을 수색했고, 히다카가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이를 감지한
히다카는 호부(房府)로 달아나 잠적했지만 9월 21일, 체포되고 말았다.

경찰은 당시 로만스 살해사건 외에는 히다카의 범행에 대해 알지 못했으나, 히다카는 경찰이 이미 모든
사건을 알고 있으며, 정상참작을 위해 자신의 자백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 착각하고 먼저 저지른 세 건의
살해사건을 모두 자백하고 말았다. 히다카의 자백에 따라 수색이 이뤄졌고 10월 1일에 코게쯔의 사체가,
5일에 후지야마의 사체가 각각 발견되었다.

히로시마 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히다카는 "살인을 통해 스스로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우월감을 느끼게 되었고, 사람을 죽이는 데에서 쾌락을 느끼게 되었다"
고 진술했다.

2000년 12월 9일에 히로시마 지방법원은 히다카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히다카는 항소하지 않아 사형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이어 2006년 12월 25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참고한 곳들(이라기 보담 반쯤 번역했다고 봐도)
http://www.alpha-net.ne.jp/users2/knight9/hirosima.htm
http://gonta13.at.infoseek.co.jp/newpage443.htm
http://yabusaka.moo.jp/hiroshimata.htm
http://www8.ocn.ne.jp/~moonston/complex.htm
http://ugaya.com/private/repo_11.html
http://www.geocities.jp/hyouhakudanna/punish2000.html

by 疹冥行 | 2009/08/08 14:30 | 왜국 살인마 열전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왜국 살인마 열전 개시의 변

오랜 기간 동안 한국의 방화 관련 소식을 모아 오면서 느낀 것은,
한국에 방화가 있다면 일본에는 살인이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일본에는 살인 소식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는 두 나라 사람들의 기질의 차이를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방화만큼 확신성이 적은 범죄도 없습니다. 아주 마음 먹고 불을 붙여도
별로 타지도 않고 꺼지는가 하면, 별 생각 없이 붙인 불이 대형 화재로
이어지기도 하니 말입니다. 또한, 이러한 방화는 상당수가 홧김에,
또는 술김에 우발적으로 일어납니다.


반면, 살인은 확신성이 높습니다. 습격당한 사람은 높은 확률로 죽을
것이며, 최소한 부상을 당할 것입니다. 또 살인은 대체적으로 치밀한
계획 하에 이뤄져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는 이러한 살인을 저지른 왜국의 살인마들을 하나하나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다루는 대상은 아래와 같습니다.
1.1991년 이후에 사건을 일으켰을 것.
2.2명 이상을 죽였을 것. 다만 1명을 죽였어도 그 외의 다른 범행을 더 저질렀거나. 사회적 파장이 컸다면 다루겠습니다.


그나저나 이건 무슨 밸리로 보내야 할까요? 뉴스라고 볼 수는 없고… 역사일까요?
아니면 살인을 '질러버린' 자들에 대한 글이니 지름?

by 疹冥行 | 2009/08/01 13:45 | 왜국 살인마 열전 | 트랙백 | 덧글(1)

연락용 쓰레드・連絡帳

기사의 내용과 관계없는 사사로운 용건은 여기로.
記事の内容と関係ない私的な連絡はこのスレに。

by 日本海 | 2009/07/31 22:09 | 덧글(30)

현재 방화정보 폐간사

2006년 11월부터 오늘까지 정확히 2년 9개월 동안 계속해 온 일간 방화 매거진 → 현재 방화정보를 폐간합니다.

사유는 :
자주자주 업데이트 해 주는 것이 귀찮아서.
가 되겠습니다.

오랜 기간 지켜봐 주신 (몇 안 되는)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다음 달(이라고 해도 내일이지만)부터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써도 될만한 새로운 주제로 찾아뵙겠습니다.

by 疹冥行 | 2009/07/31 21:12 | 현재 방화정보 | 트랙백 | 덧글(1)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