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4편 : 사람의 약해진 마음을 파고들다 - 마에우에 히로시(前上博) 왜국 살인마 열전

살인자 정보 :
이름 : 마에우에 히로시(前上博)
출생 : 1968년 8월 8일, 오사카부
사망 : 2009년 7월 28일, 오사카 구치소에서 처형
살해 실적 : 3명(2005년 2월 1명, 5월 1명, 6월 1명)
살해 동기 : 스스로의 페티시즘적 성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기타 범죄 : 폭력 등

*.사진은 msn산케이뉴스의 기사로 대체합니다.



피살자 정보 :
피살자 1 : 25세 무직, 여
피살자 2 : 14세 중학생, 남
피살자 3 : 21세 대학생, 남

*.나이, 직업 등은 모두 피살 당시를 기준합니다.
*.본 건 피살자들은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스스로의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람을 죽이기에 이른 변태 살인마 마에우에
히로시는 첫째, 흰 양말에 대한 페티시즘적 성향과 둘째, 목이 졸린 사람이 괴로워 하는 것을 보면서
성적 쾌감을 느끼는 두가지의 변태적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흰 양말에 대한 페티시즘은 중학교 재학중 흰 양말을 신은 한 교생에 대해 성적 흥분을 느낀 이후로
가지게 되었고, 목이 졸린 사람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은 역시 중학교 시절
읽은 에도가와 란포(江戶川亂步)의 쾌락살인을 주제로 한 작품의 영향이었다.



마에우에는 카나가와 공과대학교에 재학중이던 1988년, 흰 양말을 신고 있는 동료 학생을 질식시킬
목적으로 덮쳤다가 학교를 그만 두기에 이른다. 이후 그는 우체국에 취직했지만, 1995년에 동료 직원을
역시 질식시키려고 마취총을 들고 습격했다가 체포되었다. 풀려나고 나서도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2001년에 행인들을 닥치는 대로 공격하다가 체포되어 집행유예를 선고받게 된다.

하지만, 집행유예 기간 중에 또 행인을 덮쳐 또 체포되어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게
된다.



2004년 7월에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마에우에는 직접 사람을 덮쳐서는 스스로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전에 철창 신세를 먼저 지게 된다는 것을 처절하게 학습하게 되었다. 결과로 마에우에는 설사 죽더라도
문제가 없는 사람을 물색하게 되고, 그 결론은 '자살 지원자'였다.

첫번째 사건은 2005년 2월 14일에 벌어졌다. 마에우에는 사전에 피살자 1에게 차 안에서 연탄가스를
피워 자살하자고 제안하였고, 피살자 1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마에우에를 찾아왔다. 그러나 피살자 1을
차에 태우고 가던 마에우에는 차를 세우고 살인자로 돌변, 피살자 1을 목조르기 시작했다. 피살자 1이
정신을 잃으면 이를 깨우기를 반복하여 피살자 1이 죽음에 이르게 한 뒤, 사체의 신원이 드러날 것을
우려하여 옷을 모두 벗긴 뒤, 미리 파 둔 구덩이 파묻었다.

두번째 사건은 약 석 달 뒤인 5월 21일에 일어났다. 전체적으로는 첫번째 사건과 대동소이하나, 차이는
사체를 구덩이에 파 묻지 않고 그냥 유기했으며, 피살자 2의 아버지에게 유괴를 가장한 협박 전화를
했다는 것이 있다.

세번째 사건은 두번째 사건으로부터 불과 3주 뒤인 6월 10일 발생했다. 사건의 진행과정이나 수법은
앞의 사건들과 대동소이했다.



세번째 살인으로부터 2개월여인 8월 5일, 마에우에는 체포되었다.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2007년
3월 27일,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다. 변호사는 항소하려 했으나 마에우에가 이를 중지시켰고, 사형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2009년 7월 28일, 선고로부터 2년이라는 이례적인 짧은 기간만에 형이 집행되어
변태 살인마의 목숨은 끝났다.



본 건에서 생각해 볼 것은 어떤 변태적이고 죄질이 나쁜 범죄가 발생해도 영향을 미친 요인이 서브
컬처적인 것이 아니면 참으로 관대하다는 것이다. 간혹 방송 등에서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보도하면서 '범인은 평소부터 총질하는 FPS를 즐겼으며 운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고 나면 거의
예외 없이 게임에 대해서, 또는 만화영화에 대해서, 아니면 뭔가 특수한 취미에 대한 탄압(?) 여론이
형성되고, 그 여론을 등에 업고 실제적인 규제가 만들어지곤 한다. 이 현상은 한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일본도 별 차이가 없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코바야시 카오루(小林薰) 사건 이후의 일본의
여론을 들 수 있다. 코바야시는 서브컬처적인 것과는 하등에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애꿎은 덕후 계층에 적대적인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어디든 한없이 관대한 것 같다. 마에우에가 붙잡혀 사건의 전모가
알려진 뒤, 흰 양말은 살인으로 이어지는 페티시즘적 아이템이니 금지해야 한다든가,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은 가장 끔찍한 범죄인 살인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니 구입과 소지를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과연 마에우에가 맨날 서든스트라이크를 즐기고, 특수한 취향의
AV를 잔뜩 모아놓고 즐기는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참고한 곳들(이라기 보담 반쯤 번역했다고 봐도) :
http://sankei.jp.msn.com/affairs/trial/090728/trl0907281113001-n1.htm
http://subzero.iza.ne.jp/blog/entry/141915
http://gonta13.at.infoseek.co.jp/newpage495.htm
http://www.geocities.jp/waramoon2000/bou_osaka_051202.html
http://www.geocities.jp/waramoon2000/bou_osaka_060126.html
http://huemat.at.webry.info/200508/article_4.html
http://tamakki.blog.eonet.jp/furafura/2005/08/post-6cac.html
http://crime.log.thebbs.jp/1123338897.html
http://news19.2ch.net/test/read.cgi/newsplus/1134465216/

*.2ch 쓰레드뷰어 unkar.jp를 활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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