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 정보 :
이름 : 히다카 히로아키(日高広明)
출생 : 1962년 4월, 미야자키현 미야자키시
사망 : 2006년 12월 25일, 히로시마 구치소에서 사형 집행, 향년 44세
살해 실적 : 4명(1996년 4월 1명, 8월 1명, 9월 2명)
살해 동기 :
1.사람을 죽이는 자체에 쾌락을 느낌
2.채무 변제를 위한 자금의 마련, 그러나 실제 훔친 금액은 4건 다 합해도 12만엔(+12만엔)에 불과.
기타 범죄 : 절도, 음주운전, (살인에 부대된) 사체유기
피살자 정보 :
피살자 1 : 미야지 사토에(宮地里枝, 16, 고등학생)
피살자 2 : 코게쯔 리에(古月理江, 23, 음식점 점원)
피살자 3 : 후지야마 마리코(藤山万里子, 45, 호스테스)
피살자 4 : 로만스 요코(ロマンス洋子, 32, 매춘부)
*.피살자의 이름은 읽는 방법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관계로 잘못 읽었을 수 있습니다.
*.나이, 직업 등은 모두 피살 당시를 기준합니다.
히다카 히로아키는 미야자키현의 유복한 가정 출신이다. 뿐만 아니라, 히다카 본인도 유능한 사람으로,
학업 성적도 우수하고 운동에도 재능이 있었다. 또 교우관계도 원활했다. 장래 희망은 교사 내지는
공무원으로, 문자 그대로의 촉망받는 청소년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히다카의 인생이 빗나가기 시작한 것은 대입부터이다. 그는 담임 교사의 권유로 쯔쿠바 대학교에
도전했지만. 낙방하고 말았다. 게다가 보험삼아 응시했던-즉 합격을 확신했던-후쿠오카 교육대학교조차
합격하지 못했다. 결국 히다카가 입학한 곳은 후쿠오카 대학교였다. 그러나 사립학교인 후쿠오카
대학교는 국립 대학교인 앞의 두 학교에 비해 그 격이 낮았고, 중고교 때 학벌이 좋지 못한 교사를
업신여기기도 했던 히다카로서는 크나큰 굴욕이었다. 결국 히다카는 입학한 뒤로는 학업을 멀리하고
주색에 빠졌고, 스스로가 쯔쿠바 대학교에 도전했던 경력으로 동료 학생들에 대한 우월감에 도취되었다.
그러나 4학년이 되자 히다카가 그렇게 얕보던 동료 학생들 중에는 히다카가 그렇게 선망하던 공무원이
된 사람도 나왔고, 히다카는 반대로 유급하고 말았다. 결국 히다카는 대학교를 중퇴하고 미야자키현으로
돌아갔고, 주위에는 사법시험에서 떨어져서 포기하고 돌아온 것이다고 얼버무렸다.
이후 시청의 비정규직 직원으로 취직했지만, 여전히 주색에 빠져 소매치기와 음주 운전을 반복하던
히다카는 1986년 1월 25일, 어느 가정집에 쳐들어가 집에 있던 사람을 위협하여 현금과 예금통장을
빼앗았다. 그러나 곧 히다카는 체포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하게 된다.
출소 후인 1989년, 히다카는 작은 아버지가 사는 히로시마로 이주하여 택시 운전사로 취직했고,
이어 1991년에는 작은 아버지의 소개로 결혼도 했다. 그러나 히로시마에서도 주색에 빠진 생활은
여전하여 월급의 대부분을 주색으로 탕진했고, 결혼 당시에도 500만엔에 달하는 빚을 지고 있었다.
1993년에는 자식이 태어났지만 곧 아내가 정신이상 증세를 보여 입원, 자식은 처가에 맡기게 되었다.
이후로도 주색에 빠진 생활은 계속되었고, 아내의 입원비 등으로 인해 더욱 많은 소비를 하게 되어
히다카의 빚은 늘어만 갔다.
1996년 4월 18일 저녁, 히다카는 히로시마에서 원조교제를 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유명했던
신텐치(新天地) 공원에서 첫 피살자인 미야지에게 접근, 2만엔을 건너주고 성 관계를 갖기로 한다.
그러나 히로시마에서 20km 떨어진 쿠레(吳)에 사는 미야지는 히다카에게 자신이 오사카에서 왔고,
히로시마에서 돈을 모아 쿠레에 상환하러 가야한다고 거짓말을 한다. 이 말을 믿은 히다카는 관계를
가지는 것을 포기하나 바로 돌아가려 하는 미야지를 보고 속았다고 판단하게 된다. 또, 다음 날로
다가온 빚의 월부금 상환도 있어, 미야지가 가지고 있다고 말한 10만엔과 자신이 건네준 2만엔을
강탈할 생각을 하게 된다.
이어 히다카는 미야지에게 쿠레까지 태워 주겠다고 제안, 미야지를 태우고 가다가 차에 이상이 생긴
것처럼 가장, 미야지에게 차를 살피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여 미야지가 등을 보인 틈을 타 미야지를
목 졸라 죽이고 그 사체를 내다버린다.
하지만, 미야지의 말과는 달리 미야지는 단 3만엔만을 가지고 있었고 히다카는 자신이 건네준 2만엔까지
총 5만엔을 찾아내는 데 그쳤다.
미야지의 사체는 5월 6일 발견되었다.
미야지가 오사카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된 히다카는 언제 체포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좌불안석이었지만,
7월이 되어도 경찰이 자신을 용의자로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에 히다카는 안심하고 두번째
범행을 저지르게 된다.
1996년 8월 13일, 히다카는 두번째 피살자인 코게쯔를 미야지와 대동소이한 방법으로 유인,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했다. 히다카는 코게쯔로부터 자신이 건네준 3만엔을 포함하여 도합 52000엔을 훔쳐냈다.
미야지 사건과의 차이점은 성 관계를 가졌다는 정도이다.
1996년 8월 30일, 히다카는 매춘부인 후지야마를 목격한다. 후지야마와 히다카는 3년 정도 전에 매춘을
하여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그런데 당시 히다카가 가지고 있던 돈을 도난당했고, 히다카는 이로 인해
후지야마를 의심하고 있었다. 이는 히다카가 후지야마를 살해하는 동기의 하나가 된다.
9월 7일, 히다카는 후지야마를 유인하여 차내에서 관계를 가질 것을 요구한다. 관계 중 히다카의 행동에
위험을 느낀 후지야마는 저항하나 역시 교살당하고 만다. 히다카는 자신이 건네준 3만엔을 포함하여 총
82000엔을 훔치고, 후지야마의 사체를 싣고 가다가 적당히 길가에 버리고 달아났다.
마지막 범행은 후지야마의 피살로부터 1주일 뒤인 9월 14일 일어났다. 피살자는 역시 히다카와 안면이
있는 매춘부인 로만스였다(로만스라는 성은 외국인 남성과 결혼하여 그 성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히로시마 교외의 호텔로 가 관계를 가진 히다카는 로만스를 귀가시켜주겠다는 명목으로 태우고 가다가
미야지, 코게쯔와 동일한 방법으로 속이려 했으나, 이미 히다카의 사건은 히로시마의 매춘여성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어 위험을 느낀 로만스는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히다카는 달아나는 로만스를 쫓아가 끌고와
실신할 때까지 구타한 다음 목을 졸라 살해하고 자신이 건네준 4만엔을 포함한 56000엔을 빼앗고 사체를
유기했다.
다행히도 로만스의 사체는 바로 다음 날 아침에 발견되었고, 전날 밤 로만스가 히다카의 택시에 타는 것을
목격한 증인도 있어 경찰은 바로 히다카를 의심하게 된다.
경찰은 히다카가 일하는 택시 회사의 운행 기록을 수색했고, 히다카가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이를 감지한
히다카는 호부(房府)로 달아나 잠적했지만 9월 21일, 체포되고 말았다.
경찰은 당시 로만스 살해사건 외에는 히다카의 범행에 대해 알지 못했으나, 히다카는 경찰이 이미 모든
사건을 알고 있으며, 정상참작을 위해 자신의 자백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 착각하고 먼저 저지른 세 건의
살해사건을 모두 자백하고 말았다. 히다카의 자백에 따라 수색이 이뤄졌고 10월 1일에 코게쯔의 사체가,
5일에 후지야마의 사체가 각각 발견되었다.
히로시마 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히다카는 "살인을 통해 스스로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우월감을 느끼게 되었고, 사람을 죽이는 데에서 쾌락을 느끼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2000년 12월 9일에 히로시마 지방법원은 히다카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히다카는 항소하지 않아 사형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이어 2006년 12월 25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참고한 곳들(이라기 보담 반쯤 번역했다고 봐도)
http://www.alpha-net.ne.jp/users2/knight9/hirosima.htm
http://gonta13.at.infoseek.co.jp/newpage443.htm
http://yabusaka.moo.jp/hiroshimata.htm
http://www8.ocn.ne.jp/~moonston/complex.htm
http://ugaya.com/private/repo_11.html
http://www.geocities.jp/hyouhakudanna/punish2000.html
이름 : 히다카 히로아키(日高広明)
출생 : 1962년 4월, 미야자키현 미야자키시
사망 : 2006년 12월 25일, 히로시마 구치소에서 사형 집행, 향년 44세
살해 실적 : 4명(1996년 4월 1명, 8월 1명, 9월 2명)
살해 동기 :
1.사람을 죽이는 자체에 쾌락을 느낌
2.채무 변제를 위한 자금의 마련, 그러나 실제 훔친 금액은 4건 다 합해도 12만엔(+12만엔)에 불과.
기타 범죄 : 절도, 음주운전, (살인에 부대된) 사체유기
피살자 정보 :
피살자 1 : 미야지 사토에(宮地里枝, 16, 고등학생)
피살자 2 : 코게쯔 리에(古月理江, 23, 음식점 점원)
피살자 3 : 후지야마 마리코(藤山万里子, 45, 호스테스)
피살자 4 : 로만스 요코(ロマンス洋子, 32, 매춘부)
*.피살자의 이름은 읽는 방법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관계로 잘못 읽었을 수 있습니다.
*.나이, 직업 등은 모두 피살 당시를 기준합니다.
히다카 히로아키는 미야자키현의 유복한 가정 출신이다. 뿐만 아니라, 히다카 본인도 유능한 사람으로,
학업 성적도 우수하고 운동에도 재능이 있었다. 또 교우관계도 원활했다. 장래 희망은 교사 내지는
공무원으로, 문자 그대로의 촉망받는 청소년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히다카의 인생이 빗나가기 시작한 것은 대입부터이다. 그는 담임 교사의 권유로 쯔쿠바 대학교에
도전했지만. 낙방하고 말았다. 게다가 보험삼아 응시했던-즉 합격을 확신했던-후쿠오카 교육대학교조차
합격하지 못했다. 결국 히다카가 입학한 곳은 후쿠오카 대학교였다. 그러나 사립학교인 후쿠오카
대학교는 국립 대학교인 앞의 두 학교에 비해 그 격이 낮았고, 중고교 때 학벌이 좋지 못한 교사를
업신여기기도 했던 히다카로서는 크나큰 굴욕이었다. 결국 히다카는 입학한 뒤로는 학업을 멀리하고
주색에 빠졌고, 스스로가 쯔쿠바 대학교에 도전했던 경력으로 동료 학생들에 대한 우월감에 도취되었다.
그러나 4학년이 되자 히다카가 그렇게 얕보던 동료 학생들 중에는 히다카가 그렇게 선망하던 공무원이
된 사람도 나왔고, 히다카는 반대로 유급하고 말았다. 결국 히다카는 대학교를 중퇴하고 미야자키현으로
돌아갔고, 주위에는 사법시험에서 떨어져서 포기하고 돌아온 것이다고 얼버무렸다.
이후 시청의 비정규직 직원으로 취직했지만, 여전히 주색에 빠져 소매치기와 음주 운전을 반복하던
히다카는 1986년 1월 25일, 어느 가정집에 쳐들어가 집에 있던 사람을 위협하여 현금과 예금통장을
빼앗았다. 그러나 곧 히다카는 체포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하게 된다.
출소 후인 1989년, 히다카는 작은 아버지가 사는 히로시마로 이주하여 택시 운전사로 취직했고,
이어 1991년에는 작은 아버지의 소개로 결혼도 했다. 그러나 히로시마에서도 주색에 빠진 생활은
여전하여 월급의 대부분을 주색으로 탕진했고, 결혼 당시에도 500만엔에 달하는 빚을 지고 있었다.
1993년에는 자식이 태어났지만 곧 아내가 정신이상 증세를 보여 입원, 자식은 처가에 맡기게 되었다.
이후로도 주색에 빠진 생활은 계속되었고, 아내의 입원비 등으로 인해 더욱 많은 소비를 하게 되어
히다카의 빚은 늘어만 갔다.
1996년 4월 18일 저녁, 히다카는 히로시마에서 원조교제를 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유명했던
신텐치(新天地) 공원에서 첫 피살자인 미야지에게 접근, 2만엔을 건너주고 성 관계를 갖기로 한다.
그러나 히로시마에서 20km 떨어진 쿠레(吳)에 사는 미야지는 히다카에게 자신이 오사카에서 왔고,
히로시마에서 돈을 모아 쿠레에 상환하러 가야한다고 거짓말을 한다. 이 말을 믿은 히다카는 관계를
가지는 것을 포기하나 바로 돌아가려 하는 미야지를 보고 속았다고 판단하게 된다. 또, 다음 날로
다가온 빚의 월부금 상환도 있어, 미야지가 가지고 있다고 말한 10만엔과 자신이 건네준 2만엔을
강탈할 생각을 하게 된다.
이어 히다카는 미야지에게 쿠레까지 태워 주겠다고 제안, 미야지를 태우고 가다가 차에 이상이 생긴
것처럼 가장, 미야지에게 차를 살피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여 미야지가 등을 보인 틈을 타 미야지를
목 졸라 죽이고 그 사체를 내다버린다.
하지만, 미야지의 말과는 달리 미야지는 단 3만엔만을 가지고 있었고 히다카는 자신이 건네준 2만엔까지
총 5만엔을 찾아내는 데 그쳤다.
미야지의 사체는 5월 6일 발견되었다.
미야지가 오사카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된 히다카는 언제 체포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좌불안석이었지만,
7월이 되어도 경찰이 자신을 용의자로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에 히다카는 안심하고 두번째
범행을 저지르게 된다.
1996년 8월 13일, 히다카는 두번째 피살자인 코게쯔를 미야지와 대동소이한 방법으로 유인,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했다. 히다카는 코게쯔로부터 자신이 건네준 3만엔을 포함하여 도합 52000엔을 훔쳐냈다.
미야지 사건과의 차이점은 성 관계를 가졌다는 정도이다.
1996년 8월 30일, 히다카는 매춘부인 후지야마를 목격한다. 후지야마와 히다카는 3년 정도 전에 매춘을
하여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그런데 당시 히다카가 가지고 있던 돈을 도난당했고, 히다카는 이로 인해
후지야마를 의심하고 있었다. 이는 히다카가 후지야마를 살해하는 동기의 하나가 된다.
9월 7일, 히다카는 후지야마를 유인하여 차내에서 관계를 가질 것을 요구한다. 관계 중 히다카의 행동에
위험을 느낀 후지야마는 저항하나 역시 교살당하고 만다. 히다카는 자신이 건네준 3만엔을 포함하여 총
82000엔을 훔치고, 후지야마의 사체를 싣고 가다가 적당히 길가에 버리고 달아났다.
마지막 범행은 후지야마의 피살로부터 1주일 뒤인 9월 14일 일어났다. 피살자는 역시 히다카와 안면이
있는 매춘부인 로만스였다(로만스라는 성은 외국인 남성과 결혼하여 그 성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히로시마 교외의 호텔로 가 관계를 가진 히다카는 로만스를 귀가시켜주겠다는 명목으로 태우고 가다가
미야지, 코게쯔와 동일한 방법으로 속이려 했으나, 이미 히다카의 사건은 히로시마의 매춘여성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어 위험을 느낀 로만스는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히다카는 달아나는 로만스를 쫓아가 끌고와
실신할 때까지 구타한 다음 목을 졸라 살해하고 자신이 건네준 4만엔을 포함한 56000엔을 빼앗고 사체를
유기했다.
다행히도 로만스의 사체는 바로 다음 날 아침에 발견되었고, 전날 밤 로만스가 히다카의 택시에 타는 것을
목격한 증인도 있어 경찰은 바로 히다카를 의심하게 된다.
경찰은 히다카가 일하는 택시 회사의 운행 기록을 수색했고, 히다카가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이를 감지한
히다카는 호부(房府)로 달아나 잠적했지만 9월 21일, 체포되고 말았다.
경찰은 당시 로만스 살해사건 외에는 히다카의 범행에 대해 알지 못했으나, 히다카는 경찰이 이미 모든
사건을 알고 있으며, 정상참작을 위해 자신의 자백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 착각하고 먼저 저지른 세 건의
살해사건을 모두 자백하고 말았다. 히다카의 자백에 따라 수색이 이뤄졌고 10월 1일에 코게쯔의 사체가,
5일에 후지야마의 사체가 각각 발견되었다.
히로시마 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히다카는 "살인을 통해 스스로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우월감을 느끼게 되었고, 사람을 죽이는 데에서 쾌락을 느끼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2000년 12월 9일에 히로시마 지방법원은 히다카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히다카는 항소하지 않아 사형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이어 2006년 12월 25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참고한 곳들(이라기 보담 반쯤 번역했다고 봐도)
http://www.alpha-net.ne.jp/users2/knight9/hirosima.htm
http://gonta13.at.infoseek.co.jp/newpage443.htm
http://yabusaka.moo.jp/hiroshimata.htm
http://www8.ocn.ne.jp/~moonston/complex.htm
http://ugaya.com/private/repo_11.html
http://www.geocities.jp/hyouhakudanna/punish2000.html



덧글
초록불 2009/08/08 22:43 # 답글
잘 보았습니다.
疹冥行 2009/08/09 19:38 #
초록불님 같은 메이저한 분이 오시다니… 영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