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의 생트집...취재원 보호는 만인지상의 법이 아니다.

드넓은 오지랍과 개수작질로 2008년 늦봄을 달구었던 PD수첩이 검찰의 개가 될 수 없다며 드디어 사자후의 일성을 토했다. 꼴값도 유만부동이지. 정권이 바뀌기 전, 정확히 2007년 12월 18일 23시 59분 55초까지 노무현 정권의 충실한 똥개를 자처했던 PD수첩의 후안무치한 행각을 벌써 잊었단 마링가?

보도내용의 진위여부는 차치하고라도 피고 PD수첩이 명예훼손 소송의 당사자가 된 만큼 문제의 자료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방어해야할 소송법상의 지위에 있다. 따라서 검찰의 원본테이프 제출 요구는 아주 정당한 것이다. 압수수색도 아니고 임의제출을 공문으로 요청한 것인데, 왠 언론의 자유니 탄압이니 운운하고 지랄이십니까?

방송국 입장에서는 언론의 자유나 취재원보호도 중요하겠지만 검찰에게 수사권이나 기소권도 중요한 것이다. 어느 쪽이 더 중요하느냐는 흔히 법학에서 얘기하는「공공의 이익을 비교형량」하는 자세가 필요하긴 하다. 그러면 PD수첩의 언론의 자유 운운은 정당한가?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우리 법은 PD수첩의 사례와 같이 멋대로 아가리를 놀려 사회적 아노미 상태를 야기하거나, 개개인 또는 국가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도록 여러가지 제동장치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형법318조 업무상 지득(知得)한 비밀의 보호인가?하면 그것도 아니다. 기자는 위 조항이 규정하고 있는 신분적 지위에 있지 않다. 또 보호행위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취재원 보호차원에서는 어떤가? 엄밀하게 말해 PD수첩은 취재""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취재""를 보호하기 위해 뻗대고 있는 중이라는 걸 솔직하게 실토해야 한다. 취재원 보호라는 것은 말 그대로 취재원을 까발림으로 해서 그 사람이 법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피해를 입게되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한 조처이다. 검찰이 위 PD수첩 원본테이프를 입수하여 조사한다고 해서 취재원들에게 어떤 피해가 가는 것도 아니다.

취재원 보호는 우리나라 현행법상 명문화된 입법례가 없다. 단지 관행상으로 통용되고 있는 관념적 특권일 뿐이며, 굳이 거론하자면 헌법 제21조에서 언급하고 있는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규정에 함의된 일반적인 보호법익으로 추상하고 있을 뿐이다.

독일이나 미국의 입법례를 보자면 취재원 보호는 크게 3가지 차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1) 증언거부권, 2) 자료제출거부권, 3) 수색·압수로부터의 면제권이 그것이다.

먼저 증언거부권(秘匿權)이 타당한가? 아니다. 취재원이 아닌 취재자가 형사소송으로 피소되었을 경우 이 증언거부권은 부정된다. 만약 이를 거부한다면 미국 연방대법원의 최근 판례와 같이 법정모독죄가 적용될 것이다. 또한 1972 미국의 New Jersey 주법원 판례에서와 같이 취재원의 성명이나 신분이 드러난 경우 보호할 법익이 없으므로 증언거부권이 부정된다. 만약 검찰이 방송에서 보도된 아레사빈슨의 어머니, 주치의, 협회임원 등등의 인터뷰 전문을 요구한다면 하등의 거부할 명분이 없는 것이다.

두번째, 자료제출거부권은 타당한가? 아니다. 지금은 폐지된 구)언론기본법에서는 기자가 범죄구성의 혐의가 있는 경우에는 보호대상에서 제외된다. 예컨대 명예훼손을 들어보자. 만일 한 기사가 명예훼손으로 제소된 경우를 가정해 보면 기자등 언론인은 처벌받지 않기 위해서는 당해기사가 진실한 기사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임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형법 310조)

세번째, 원본테이프를 제출하지 않아 압수수색을 당할 경우 이를 거부할 수 있는가? 아니다. 형사소송법 제112조상의 업무상 비밀에 따르면 압수거부의 주체로서 기자가 열거되어 있지 아니하다. 미국의 경우에도 검찰은 해당 자료에 의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소송을 진행할 수 없는 대안부재의 경우에 법원이 발부하는 압수수색 영장에 의거 정당하게 집행할 수 있다는 판례가 있다.(Zurcher v. Stanford Daily Case, 1978)

취재원 보호차원에서 압수수색의 면제권을 인정하고 있는 미국 각 주에서도 이런 류의 예외적인 조항을 두고 있다. 예를 들자면, Arkansas주는 당해 기사가 "공공의 이익에 관계되지 아니하고 악의로 쓰여진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 New Mexico주는 "불의의 방지에 필수적"인 경우, Oregon, Rhode Island, Tennessee주는 기자가 "명예훼손의 피소자"인 경우에는 특권이 제한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같이 만약 PD수첩이 만약 검찰의 압수수색을 방해한다면 전혀 근거도 없이 떼법을 행사하게 되는 셈이며, 이런 사태가 발생할 시 검찰은 즉각 공무집행방해죄로 이들을 처벌해야 할 것이다.

취재원 보호에 관한 입법례가 비교적 잘 정비된 미국의 경우에도 이 법률을 매우 제한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미국 전역을 들썩거리게 했던 "leak gate"의 경우를 보자.(http://100.naver.com/100.nhn?docid=797243)

"leak gate"의 Fitzgerald 특별검사는 시사주간지「타임」의 Matthew Cooper기자와 뉴욕 타임즈의 Judith Miller 기자가 Plame 신분 누설의 중간 매개 역할을 한 것으로 밝혀내고 연방대배심에서 취재원 공개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거부하자 Fitzgerald 특별검사는 "언론인들은 취재원의 완벽한 익명성을 약속할 자격이 없다"고 하면서 ‘법정모독죄’로 두 기자를 워싱톤 연방지방법원에 정식 기소하였다.

구구절절한 내용을 여기서 다 밝힐 필요는 없거니와, 워싱턴 연방지방법원의 최종선고심에서 Miller 기자는 자신이 수정헌법 1조의 언론의 자유를 행사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Hogan 판사는 연방 소송절차에서 증언이 필요할 때 기자들이 다른 시민들보다 더 많은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기자에게 법을 뛰어넘는 특권은 없다" journalistscould not attempt to put themselves above the law)고 밝혔다. 매우 타당한 판례이다.

미국에서조차 이렇게 제한적으로 해석되고 있는 취재원 보호의 법리를 PD수첩은 세계적인 관행이라 주장하며 무소불위의 깽판을 신명나게 벌이고자 한다. 그러나 그들의 뜻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이제 결론을 내려보자. PD수첩이 주장하고 있는 언론의 자유는 명예훼손죄의 법리에서 자유롭지 아니하다. 그들의 주장처럼 만약 농수산부가 명예훼손죄의 원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원고적격 확인 소송"을 통해 구제받으면 될 일이다.

또한 취재원 보호 운운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거니와, 설령 그 관행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검찰조사로 인해 취재원이 하등의 불이익을 받을 이유가 없으므로 보호받을 법익 자체가 없다. 취재원 보호 운운은 변명일 뿐이며, 생떼에 불과하다. PD수첩은 사회적 공기(公器)로서의 소명을 망각한 채, 무책임한 편집과 날조로 사회적 불안을 야기한 책임을 지금이라도 인정해야 한다.

40여분의 방송분량 중 전체의 5분의 1에 해당되는 문제의 영상을 내보내 전국적인 혼란을 야기해놓고 문제가 되니까, 후속보도를 하면서 10초동안 나레이션으로 대충 때운게 전부다. 이를 두고 해명보도 했지않느냐며 쌍판때기에 철판을 깔아서야 쓰겠는가?


by 眞明行 | 2008/07/05 22:34 | 時.事.通.感. | 트랙백 | 덧글(38)

일상잡록1

1. 유가상승
   - 第1의 아해가 자고 일어나면 치솟는 유가를 보면 무섭다 그리오.
   - 第2의 아해가 치솟는 물가를 보면 무섭다 그리오.
   - 第3의 아해가 치솟는 집값은 보면 무섭다 그리오.
   - 第4의 아해가 치솟는 금리를 보면 무섭다 그리오.
   - 第5의 아해가 치솟는 세금을 보면 무섭다 그리오.
   - 第6의 아해가 치솟는 환율을 보면 무섭다 그리오.
   - 第7의 아해가 치솟는 등록금을 보면 무섭다 그리오.
   - 第8의 아해가 치솟는 월세를 보면 무섭다 그리오.
   - 第9의 아해가 치솟는 보험료를 보면 무섭다 그리오.
   - 第10의 아해가 치솟는 빚을 보면 무섭다 그리오.
   - 第11의 아해가 치솟는 부도율을 보면 무섭다 그리오.
   - 第12의 아해가 치솟는 실업율을 보면 무섭다 그리오.
   - 第13의 아해가 치솟는 불만을 보면 무섭다 그리오.

   13인의 아해는 무서워하는 아해들만 그러케뿐이 모혓소. 다른 사정은 업는 것이 차라리 나앗소.
   그럼에도 주말만 되면 놀러가는 차들로 도로가 미어터져 무섭다 그리오.
   논외의 者는 혹 말하오. 쌀독 바닥 긁는 소리가 아직 작게 들릴 뿐이라고..

2. 승진인사
   - 소신있고 성실한 자는 떨어졌다.
   - 소신없고 성실한 자는 승진했다.
   - 소신도 없고 성실하지도 못한 사람은 그대로 있다.
   - 힘있는 부서에 줄을 댄 자는 살아남았고 조직을 위해 싸운 자는 떠났다.
   - 그래서 조직에는 책임감 없이 비루한 자들만 남았다.

3. 정의구현사제단
   -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은 없다.
   - 어둠 속에 있는 자들이 어둠과 빛을 분간할 사려는 더더욱 없겠지.
   - "정의"는 오직 성서에 있을 뿐, 세속에서 구할 수 없나니.
   - 주한미군철수와 연방제통일이 정의라고 믿는 다면 그들은 사제(司祭)가 아니라 사제(邪弟)일 뿐.
   - 이문열의 말마따나 예수를 목매달 사람들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독사의 자식들 같으니라고.

4. 미국산 쇠고기
   - 자본주의는 정직하다
   - 소비자는 현명하다.
   - 선동으로 시장이 서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가능하다면 아주 잠시 뿐이겠지.
   - 수요가 있으면 공급은 당연한 것. 촛불로 막아보겠다고 두달 동안 무법천지를 만들었지만 현실은 이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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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제나 국민의 반대편에 있었으면서 국민을 파는 사람들... 유리하면 유리한대로 국민들의 80%가 어쩌고
     여론이 어쩌고 저쩌고 그러다가 지들이 불리하면 똘레랑스 찾고 다수의 폭거를 경계하자며 떠드는 그들..
     공기로도 전염되는 프리온 본좌설로 재미 좀 봤으면 그만둘 때도 되지 않았나?
     아이들이 무슨 죄냐고? 아이들을 지켜주자고? 그런 놈들이 아이들을 방패삼아 폭도짓을 하셨세여?
     어익후 뻔뻔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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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거리로 뛰쳐나왔다고? 두달 동안 개지랄했으면 이제 알아 먹을 만큼
     알아 먹었으니, 이제 각자 소비자의 판단에 맡기고 너희들의 본업으로 돌아가라. 학생은 다시 학교로
     노동자는 일터로, 주부는 가정으로, 빨갱이는 게토로 다시 겨들어가. 꺼져버려.

     먹고 싶은 사람은 자기 돈 내고 먹고 살게 걍 놔둬. 너희들을 길거리로 내몬 PD수첩의 개수작질이 뽀록난지
     오래고, 세계적인 프리온 석학들이 과장된 위험으로 확인해 준 마당에 전선을 넓힌다고 다시 좌빨들이 판치는
     세상이 오지는 않을 거 같구나. 위선을 던지고 껍데기는 버려. 너흰 계속 비싼 한우를 쳐먹으며 역시 우리 것이
     "안전해"라고 좆자위질 해도 누구하나 말릴 사람은 없어.


덧1. 가끔보면 자신을 중도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진보로 착각하는 사람들보다 더 심오한 자가당착이다.




by 眞明行 | 2008/07/05 14:29 | 雜.談.巷.說. | 트랙백 | 덧글(22)

여운형考...일제에 토지 헌납하고 목배(木杯)를 하사받다???

캐면 캘수록 쏟아져 나오는 알 수 없는 기록들..어디까지 믿어야 하고 어디까지 의심해야 하는지 필자의 짧은 소견으로는 확신이 불가능하다. 소양있는 선학들께서 선입견을 버리고 연구를 해주시길 바랄 뿐이다. 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사람은 없겠지만, 민족문제연구소처럼 입맛에 맞는 정보만 모아서 짜깁기를 하면 누구하나 매장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일 것이다.

일제시대 총독부관보를 확인하다 아주 낯익은 이름을 보았다. 토지 868평을 총독부에 헌납하고 목배(木杯)를 하사받았다는 기록이다.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비록 그의 전향문이나 친일단체 가입경력 등이 일제의 강요로 이루어졌다 치더라도 1910년대의 토지헌납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서훈 취소감이다.

물론 이 관보에 실린 여운형이 동명이인일 수도 있다. 그러길 바랄 뿐이다. 필자의 좁은 지식으로는 동명이인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다. 여운형의 전기를 보면 그는 1886년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에서 태어났다. 조부 대대로 양반집이었으며 나라로부터 하사받은 넓은 토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 위 여운형이 총독부에 도로용지로 헌납한 땅 868평의 소재지는 어디인가. 구지면(九旨面)으로 나와있다. 구지면은 일제가 1914년 부령 111호에 의거 경기도의 부군면을 통폐합 하기전의 명칭이다. 양주군에 속해있던 구지면과 망우리면 그리고 노해면 일부를 합쳐서 "구리면", 그러니까 지금의 구리시로 통폐합한 것이다.
구지면(九旨面)이 속한 양주는 여운형의 고향이다. 정확히는 양평 양서면으로 되어 있어 양평군이라 해야 맞지만  양평군과 양주군은 아주 인접해 있다. 여운형의 자서전도 자신의 고향이 양평이라고도 했다가 양주라고도 했다가 자주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양평이라고 언급한 것은 일제의 1943년 판결문과 진술서에 나오며, 「나의 半生과 波瀾苦鬪記」, 新人文學, 靑鳥社에도 나온다. 반면에 양주라고 언급한 것은 1932년 삼천리 제4권 9호에 기고한 자서전에 나온다.
또하나 문제되는 것이 기부 시점인데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구지면이 행정구역 개편되기 전인 1914년 이전에 헌납행위가 이루어졌다. 여운형이 1914년 8월 이후 만주-상해로 떠나기 전이므로 아직 조선에 거하고 있었을 당시였다. 시기적으로나 장소적으로나 우리가 알고 있는 여운형과 위의 관보에 등장하는 여운형은 전혀 무관하다고만은 볼 수 없다.

여운형 관련 조사는 이제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할 가치가 없어보인다. 혈족들이 모여사는 농촌의 같은 지역내 동명이인이 존재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0)에 가깝지만.. 진심으로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내가 틀렸기를 바란다.

by 眞明行 | 2008/07/02 01:10 | 인.물.왜.곡. | 트랙백 | 덧글(10)

여운형考...끝까지 숨기고 싶었던 황국신민 서사

일제말 대부분의 인사들이 그러했듯이 여운형도 전향을 한다. 여운형의 측근들이 작성한 전기를 보면 한결같이 대필에 의한 날조로 묘사되고 있는 바, 여운형이 친필로 작성한 술회詩가 버젓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볼 때 이들의 주장은 발뺌과 변명에 불과하다. 물론 이 친필 詩의 행방은 묘연하다. 그러나 그 내용은 남아있다. 역사적 진실을 희구하는 후손들의 입장에서는 다행(?) 셈이다.

지금까지는 여운형의 전향 사실이 단편적으로 전해져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할 길이 없었으나, 금번에 4박 5일 금쪽같은 휴가를 써가며 국립중앙도서관에 마이크로 필름으로 보관 중인 당시 신문과 관보를 샅샅이 뒤진 끝에 그 전문을 입수할 수 있었다. 그 내용이 무척 길어 두 번에 걸쳐 포스팅하고자 한다.

☞ 註: 인쇄의 질이 조악해 몇몇 글자는 판독불가하여 오자와 탈자가 있을 수 있다.
1943년 경성지방법원의 판결문을 보면 위의 전향문 내용이 일부 확인되는데,

"피고인은 현재 완전히 민족주의적인 감정을 청산하였으며, 이후 완전한 황국신민으로서 적극적으로 국가에 봉공할 것을 굳게 기대할  뿐만 아니라, 시국이 진정으로 중대한 때에 피고인의 이러한 행동이 반도의 일부 청년학생층에게 중대한 호영향을 줄 수 있는 점, 그 외에 제반의 정상에 의해 형의 집행유예의 은전을 입을 것임을 상당히 인정하여, 형법 제 25조 형사소송법 제 358조 제 2항에 의해 본 확정판결일로부터 3년간 집행을 유예한다."

전향문 말미에 나타나는 下記의 자세한 심경은 자필로 작성한 漢詩가 첨부되는데, 그 내용이 온전하지는 않으나 다음과 같다. 판독상태는 도저히 알아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마이크로 필름을 5분 이상 쳐다보았더니 눈이 침침해지고 현기증까지 났다.
이상의 내용에 대해 위작 시비라든가, 출처의 신뢰성 등을 거론하는 등 예상된 반격이 따를 수 있다. 그러나 위 내용이 경성지법에 제출된 것은 여러가지 추가 자료로 볼 때 전반적으로 사실이라 판단된다. 독립운동가이자 초대 법무부장관을 지낸 이인(李仁) 선생은「解放前後片片錄」이라는 기고를 통해 당시 사태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몽양은 유언비어죄로 경찰에 검거되어 일제에 진충갈력하며 일제의 전쟁완수를 위하여 헌신한다는 장문의 전향서와 시를 지어 바치고 석방되었던 것은 당시 매일신보에 보도되었던 것이다.

해방후 내가 미군정 때 대법관과 대법원장 서리 자리를 내놓고 검찰총장으로 앉게된지 1주 후에 지방법원 서기가 찾아와 신문지에 싼 형사기록을 나에게 준 일이 있다. 그 서기는 해방되던 때는 서울지방검사국 서기로 있었는데, 8.15 해방 날은 일본 직원은 전부 도망가고, 한(국)인 서기 2명만 남아있었다.

서류와 장부는 전부 산란(散亂)하여 (아)수라장이 되어 있을 무렵
몽양은...석방되자....서울지점에 나타나 자기의 전향서와 시문 및 이에 관한 형사기록을 찾아달라 했으나, 한 개인이 관청서류를 임의로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몽양이 그의 불명예스런 기록을 말소하려는 흉계인듯 해서 복잡해서 찾지 못한다고 말해 돌려보내고 자기가 비장(秘藏=숨겨놓고 보관함)했던 것인데 나에게 제출한다기에, 나는 다망중이라 일별한 뒤 서기국장 윤지선에게 금고에 특별보관하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이인(李仁)선생의 약력을 보면 알겠지만 해방전에는 독립운동가로서, 5.16 쿠데타 후에는 야당원로, 사망 후에는 자신의 전 재산을 한글어학회에 기부했던 절개가 있는 분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허튼 소리로 남을 중상하는 분은 아닐 것으로 사료된다.

by 眞明行 | 2008/06/29 11:55 | 인.물.왜.곡. | 트랙백 | 덧글(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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